최근 친구와 이야기 도중, 대중은 멍청한가 라는 주제가 나왔다.
나는, 언론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대중이 멍청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 친구의 주장은 이렇다.
첫번째로, 대중은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존재란 것.
이것은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성을 갖고 언론을 통해 대중의 컨트롤을 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로서 작용한다. 때문에 대중은 항상 언론에 휘둘리며, 지배층(정치업자입니다)이 뜻하는 대로 움직인다.
두번째로, 집단심리는 개인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저하시킨다는 것.
개인으로선 현명하지만, 대중은 멍청하다 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가 말해서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일만큼 대중은 어리석고, 귀가 얇다. 하나의 사실을 예로 들어보자면, 한가지 사실을 근거로 추리한 어처구니 없는 진실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 과장된 이야기로 바뀌어 버리고, 대중은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있지 아니한가.
세번째로, 개개인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대중이란, 자신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집단을 형성하여 공공의 적을 설정하는 것에 의해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
공공의 적을 설정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사고는 경직되고, 맹목적인 목표만을 좆는, 비 합목적적인 행태를 보인다.
때문에, 그 친구는 대중이란, 생각하는 능력을 거세당한 가축이 아닌가 하는 과격한 의견 또한 진술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야 다시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건 몇가지 사실에만 근거를 둔 내 아집일 가능성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정체를 신봉하고있는 내가, 그 이론을 뿌리부터 흔들게 할 그런 이론을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웃음)
하지만, 애써 그 친구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나는 대중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물론 이것저것 문제도 많고, 합목적성이 결여된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주의,주장이 다양한 대중의 속성상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멍청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멍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하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대중의 합리적인 판단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먼저 첫번째로, 밴드왜건효과나, 버퍼플레이어현상과 같은, 언론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것으로 정의되어지는 일련의 현상이 개인의 합목적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집단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에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유권자는 선거로서 의사반영시킨다. 물론 개인의 영향력이 미력한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공석을 두고 다투는 후보 양방의 세력이 백중지세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후일, 재임기간중의 오직이나, 정책발안에 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 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혹은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된 한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음을 자각하게 할 수도 있고, 또 이것이 자신의 정책을 힘있게 밀어부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조세력으로도 될 수 있음을 감안하여 볼 때,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의지가 모이고 모여, 두리뭉술한 개인의 의견들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세력화 할 수 있고, 그러한 현상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대중은 언론에 의해 의견이 바뀐다고 정의하긴 힘들지 않을까..
두번째로, 여론이 쉽게 변화한다는 사실은 딱히 확실한 단점이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것은 단지 성질일 뿐 좋은점도 나쁜점도 있다. 비행기 또한, 기동성과 안정성은 trade off의 관계에 있지 아니한가. 대중의 의견이 언론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긴 하지만, 그것을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게,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처에 유리하기도 하지 않은가. 물론, 사람마다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이것은 내 개인의 사견으로,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관점또한 있는 것을 밝혀두기 위해 적어두었다.
세번째로, 개인의 주의주장의 다양함이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는것은 의견의 다양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협하는데, 격렬한 충돌이나 타협이 동반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봤을때,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이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친 사례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 않는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은 권력자들이 아닌 대중이었음을 상기해 볼 때, 대중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옳지 못한 것에 관해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타협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대중의 의견이 충돌하고, 서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은 대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협조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딱히 개인이 멍청하고, 불의에 순응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양성이 부정된 국가는 자연히 경직되게 되어있고, 이는 부패로 이어졌던 예가 많음을 상기하여 보자면, 당장 대중이 스스로 뭉쳐서 일치 단결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엔 너무나 성급하거나, 짧은 생각이지 않을까. 일정한 목적만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그것만이 정의라는 사상은 1940년대의 독일과 일본에서 우리는 쉽게 찿아볼 수 있지 아니한가.
때문에,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대중을 함부로 멍청하다고 평가 할 수는 없다고. 대중은 집단적인 지성이다. 당장 나 자신보다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이 이 사회에 몇백, 몇천만명이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들이 자신의 주의 주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싸잡아서 비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대중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합목적성을 가지고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언론에 의해 각기 다른 프레임의 정보를 습득하더라도, 혹은 각기 다른 시점의 정보를 획득하더라도 개인의 생각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는 이상, 그 의견은 다양해지고, 때문에 집단적인 지성으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중이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졌을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가정 또한 몇번이나 과거 있어왔던 사실이다.천인천색의 다양한 개인의 목적을 정리하여 방향성을 가지고 확정되는 것이 하나의 정책이라면, 대중이야말로 흔들리는 갈대처럼 보이지만, 흙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어떠한 고목도 버티지 못할 폭풍이나 바람에도 견뎌내는, 확고한 사회의 리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런 대중을 멍청하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있을까.
뭐... 나 개인의 망상이니, 지금 봐도 너무나 허술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함미다.. 넵..(먼산)
그리고 진리의 야옹이



................뭔가 다른게 껴있지만, 그것도 야옹이입니다
헉후헉후 F14 아름답긔 야옹이는 긔엽긔!!!!
나는, 언론학을 배우는 것도 아니지만,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진심으로 대중이 멍청한지 의문이 들었다.
그 친구의 주장은 이렇다.
첫번째로, 대중은 빨리 달아오르고, 빨리 식어버리는 존재란 것.
이것은 누군가가 어떠한 목적성을 갖고 언론을 통해 대중의 컨트롤을 쉽게 할 수 있는 하나의 이유로서 작용한다. 때문에 대중은 항상 언론에 휘둘리며, 지배층(정치업자입니다)이 뜻하는 대로 움직인다.
두번째로, 집단심리는 개인의 이성적인 판단력을 저하시킨다는 것.
개인으로선 현명하지만, 대중은 멍청하다 라는 이야기도 있지 않은가. 다른 누군가가 말해서 그것을 실제로 받아들일만큼 대중은 어리석고, 귀가 얇다. 하나의 사실을 예로 들어보자면, 한가지 사실을 근거로 추리한 어처구니 없는 진실도 사람들의 입소문을 타면, 과장된 이야기로 바뀌어 버리고, 대중은 그것을 진실로 믿어버리는 경우가 있지 아니한가.
세번째로, 개개인의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대중이란, 자신과 이해관계를 같이하는 사람들을 모아, 집단을 형성하여 공공의 적을 설정하는 것에 의해 자신들의 이익을 확보하고 단결을 공고히 하려고 하는 성질이 있다는 것.
공공의 적을 설정함으로 인해, 사람들의 사고는 경직되고, 맹목적인 목표만을 좆는, 비 합목적적인 행태를 보인다.
때문에, 그 친구는 대중이란, 생각하는 능력을 거세당한 가축이 아닌가 하는 과격한 의견 또한 진술하기도 했는데,
지금 와서야 다시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렸다.
물론, 이건 몇가지 사실에만 근거를 둔 내 아집일 가능성또한 무시하지 못한다. 자유민주정체를 신봉하고있는 내가, 그 이론을 뿌리부터 흔들게 할 그런 이론을 좋아할 리 없지 않은가? (웃음)
하지만, 애써 그 친구의 의견에 반론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나는 대중이 합리적인 판단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싶다.
물론 이것저것 문제도 많고, 합목적성이 결여된 모습도 보이긴 하지만, 그것은 주의,주장이 다양한 대중의 속성상 당연한 일이고, 그로 인해 그들이 멍청하다고 단정지을 수 없기 때문에 멍청하다고 말할 수는 없지 아니한가 하고 생각을 하고 있다.
나는 대중의 합리적인 판단을 긍정적으로 보는 이유가 몇가지 있다.
먼저 첫번째로, 밴드왜건효과나, 버퍼플레이어현상과 같은, 언론의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것으로 정의되어지는 일련의 현상이 개인의 합목적적인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집단이 아닌, 자신의 이익을 위해 스스로에게 이득을 가져올 수 있는 방안을 유권자는 선거로서 의사반영시킨다. 물론 개인의 영향력이 미력한 것에는 변함이 없지만, 한 공석을 두고 다투는 후보 양방의 세력이 백중지세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후일, 재임기간중의 오직이나, 정책발안에 관해서는 상당히 조심스럽게 접근 할 수 밖에 없는 하나의 압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고, 혹은 압도적인 표로 당선이 된 한 후보가 지지자들에게, 자신이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음을 자각하게 할 수도 있고, 또 이것이 자신의 정책을 힘있게 밀어부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동조세력으로도 될 수 있음을 감안하여 볼 때, 이러한 현상은 개인의 의지가 모이고 모여, 두리뭉술한 개인의 의견들이 하나의 방향성을 가지고 세력화 할 수 있고, 그러한 현상들이 이미 존재하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따라서 대중은 언론에 의해 의견이 바뀐다고 정의하긴 힘들지 않을까..
두번째로, 여론이 쉽게 변화한다는 사실은 딱히 확실한 단점이 된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을까.
그것은 단지 성질일 뿐 좋은점도 나쁜점도 있다. 비행기 또한, 기동성과 안정성은 trade off의 관계에 있지 아니한가. 대중의 의견이 언론의 영향을 받아 시시각각 변하긴 하지만, 그것을 딱히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게, 능동적이고 유연한 대처에 유리하기도 하지 않은가. 물론, 사람마다 관점과 가치관이 다르기에 이것은 내 개인의 사견으로, 절대적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런 관점또한 있는 것을 밝혀두기 위해 적어두었다.
세번째로, 개인의 주의주장의 다양함이 웃지 못할 촌극을 벌이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는것은 의견의 다양성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의견의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협하는데, 격렬한 충돌이나 타협이 동반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봤을때, 당연한 사실이다. 하지만, 대중이 하나의 목적 아래 뭉친 사례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지 않는가.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쟁취한 것은 권력자들이 아닌 대중이었음을 상기해 볼 때, 대중은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옳지 못한 것에 관해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고, 그것은 타협과 소통에서 나오는 것이 아닐까. 대중의 의견이 충돌하고, 서로 합의점을 도출하지 못하는 것은 대중을 구성하는 개개인의 협조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지, 딱히 개인이 멍청하고, 불의에 순응하는 속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은 아닐 것이다. 다양성이 부정된 국가는 자연히 경직되게 되어있고, 이는 부패로 이어졌던 예가 많음을 상기하여 보자면, 당장 대중이 스스로 뭉쳐서 일치 단결하지 않는 것을 비판하기엔 너무나 성급하거나, 짧은 생각이지 않을까. 일정한 목적만으로 국민을 동원하고, 그것만이 정의라는 사상은 1940년대의 독일과 일본에서 우리는 쉽게 찿아볼 수 있지 아니한가.
때문에, 나는 이렇게 결론을 내린다.
대중을 함부로 멍청하다고 평가 할 수는 없다고. 대중은 집단적인 지성이다. 당장 나 자신보다 유능하고 현명한 사람이 이 사회에 몇백, 몇천만명이나 있을 것임은 자명한 사실인데, 그들이 자신의 주의 주장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싸잡아서 비판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을 비판한다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질서를 부정하는 것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대중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합목적성을 가지고 언론을 이용하는 것이다. 언론에 의해 각기 다른 프레임의 정보를 습득하더라도, 혹은 각기 다른 시점의 정보를 획득하더라도 개인의 생각이 모여 여론을 형성하는 이상, 그 의견은 다양해지고, 때문에 집단적인 지성으로서 빛을 발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대중이 서로를 포용하고 이해하려는 자세를 가졌을 때를 전제로 한 이야기로 보여질 수 있겠지만, 이러한 가정 또한 몇번이나 과거 있어왔던 사실이다.천인천색의 다양한 개인의 목적을 정리하여 방향성을 가지고 확정되는 것이 하나의 정책이라면, 대중이야말로 흔들리는 갈대처럼 보이지만, 흙속에 깊이 뿌리를 박고 어떠한 고목도 버티지 못할 폭풍이나 바람에도 견뎌내는, 확고한 사회의 리더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과연, 그런 대중을 멍청하다고 우리는 말 할 수 있을까.
뭐... 나 개인의 망상이니, 지금 봐도 너무나 허술하지만..
그냥 그렇게 생각함미다.. 넵..(먼산)
그리고 진리의 야옹이



................뭔가 다른게 껴있지만, 그것도 야옹이입니다
헉후헉후 F14 아름답긔 야옹이는 긔엽긔!!!!




덧글
백범 2011/01/30 15:29 # 답글
1945년 윤치호를 집단 마녀사냥한 인간들의 자식, 손자, 손녀들이 2000년대에 와서 안재환, 최진실, 장채원, 정선희, 황정민, 최진영 등등등... 을 집단으로 마녀사냥한 것을 기억하시는지요?대중의 힘 이란게 소수나 개인을 폭력적으로 짓밟을 수는 있습니다만, 그정도의 역량은 되는데...
문제는 대중 이란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아무도 책임을 지려 하지 않지요. 그게 더 위험한 거죠.
백범 2011/01/30 15:30 # 답글
놀라운건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별로 변치 않았다는 것입니다. 학벌도 문맹, 초등학교도 못나온 미개인들이 살던 때나, 도나개나 다 대학을 나오는 대학 800개인 세상이나... 변한게 거의 없다는게 놀라울 뿐이지요.많이 보고 배우고, 가방끈이 길면 그만큼 냉철하게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려야 되는게 정상이거늘...
Thor_Hammer 2011/03/13 02:19 #
확실히 그런 측면도 있을겁니다...근데, 학력은 그다지 합리와는 관계가 없을거에요 ㅠㅠ
제 교수님중 한분이 그러셨거든요..
아동에겐 인권이 없다, 대신 아동권이 있다 와 같은 좀 과격한 논리라던지..
독일에서 공부도 하시고 정말 대단하신 분이라고 나름 생각은 합니다만, 가끔씩 과격한 논리로 궤변 가까운 이야기를 하시니 곤란할 때가 많지요 ;;
흠.. 사람들이 휘둘리기만 하는것이 아니라, 분명 언론을 '이용'또한 하고 있음은 사실입니다.
뭐, 귀가 얇은 사람들도 있겠습니다만, 많은 사람들의 행동들이 언론을 이용하고 있는 측면도 있으리라고 보여지는건 사실일겁니다..
강희대제 2011/01/30 18:51 # 답글
전국시대인가 춘추시대인가.. 풍산군 예하 식솔도 그렇게 평가했지요.사람들은 이리저리 쉽게 왔다갔다한다던가.. 자세한 내용은 기억이 안나네요.
Thor_Hammer 2011/03/13 02:20 #
호오 그런게 있었군요